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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NG_Commission

2024. 1. 6. 00:56

새하얀 속눈썹이 하늘거리며 위아래로 흔들렸다. 슬슬 익숙해져야 할 아침 햇살은 부담스럽게도 세레스테의 시야를 번득이게 만들었다. 몇 번 허공에 손을 휘젓던 그가 결국 제 이마 위로 손을 옮기면서 너른하게 한숨을 뱉어냈다. 술을 마시고 깨기라도 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무슨 일이 있었더라, 중요한 일이 있었던 건 분명한데. 명확하게 기억이 나질 않는 탓에 세레스테가 제 미간을 손가락으로 누르며 텅 빈 머릿속을 채워 나가려 애썼다. 멍하던 표정도 잠시, 주마등처럼 어젯밤의 추억들을 떠올린 세레스테가 꼬리의 털을 쭈뼛 세우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나, 하데스랑 사귀는 건가? 제 마음을 고백하며 입을 맞춰오던 하데스의 모습이 눈앞을 스쳐 지나갔고, 세레스테의 얼굴이 곧 붉은색으로 물들고 말았다.

 

똑똑, 고심에 빠져있던 세레스테가 갑자기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놀라 파르륵 떨었다. 삐걱거리며 나무 문이 열리고, 곧 익숙한 얼굴의 남성이 접시를 손에 든 채 세레스테 쪽으로 다가오며 물었다.

 

“일어났군, 간밤엔 잘 잤나?”

 

기절하듯 쓰러졌던 것 같아서 말이야, 하데스가 그렇게 말하며 침대 끄트머리에 걸터앉았다. 그러나 세레스테는 제대로 고개조차 들지 못하고, 손가락으로 이불 천을 만지작거리며 시선을 아래로 두고 있을 뿐이었다. 음, 하고 짧게 침음한 하데스가 그런 시야 아래로 접시를 올려두며 그의 이름을 조심스레 불렀다.

 

“첼레?”

 

세레스테가 움찔하며 느린 속도로 고개를 들었다.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이 잠깐 하데스를 쳐다보았다가, 결국 눈을 마주치지도 못하고 허공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 터질 것 같은 표정에 하데스가 애써 터져 나올 뻔한 웃음을 꾹 참아냈다.

 

사실, 예상했던 반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여태까지 누굴 사랑해본 일이 없었다던 순수한 아가씨가 아닌가. 이런 일은 처음이었던 자가 정사를 치룬 상대방과 얼굴 을 바로 마주할 수 있을 리가 없다. 한낱 불장난도 아니고, 서로 사랑했기에 나누었던 시간이 아니던가. 하데스가 가볍게 눈을 깜빡였다. 그렇더라도 생각 이상으로 부끄러워하는 것 같긴 한데, 역시 이럴 땐 이야기를 더 하는 것보단 혼자 생각할 시간을 주는 것이 낫겠지. 결정을 내린 하데스가 어깨를 으쓱이며 입을 열었다.

 

“뭐, 일단 밥부터 먹자고. 그다음에 천천히 얘기해. 시간은 많으니까.”

 

하데스가 세레스테를 향해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세레스테가 간신히 그의 웃는 표정을 보곤, 고개를 겨우 끄덕였다. 두근거리는 심장이 멈추질 않는 와중에 저렇게 웃어주니, 더 몸에 열이 오르는 것만 같았다. 혹시 정말 열이 나는 건 아닐까, 제 이마에 손을 올리던 세레스테가 제 아래에 차려진 아침상을 내려다보았다. 황금 벌꿀이 올라간 크럼펫과 시데리티스 찻잎을 우려 만든 차이 투 부누, 아므라 열매가 듬뿍 들어간 샐러드가 향긋한 내음을 풍기며 세레스테의 입맛을 돋우고 있었다.

 

“차에 어울리는 디저트라도 준비해줄까, 싶었지만…… 역시 끼니는 든든하게 먹는 게 좋으니까 말이야.”

 

먹다가 물리면 안 먹어도 괜찮아, 하며 자신을 달래오는 듯한 하데스의 말투는 여태껏 보아왔던 어떤 그의 모습보다도 다정했다. 대화보다 비언어적인 표현에 익숙한 세레스테는 금방 그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를 향한 사랑이 수줍은 마음을 조금 누그러트린 덕분일까,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몇 번 어물거리던 세레스테가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고마워…….”

 

그 목소리를 들은 하데스가 가볍게 한쪽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웃었다. 그리 감사 인사를 전하면서도 제 눈을 마주하지 못한다는 점이, 제가 사랑하는 첼레답다고 생각하면서.

 

“별말씀을. 혹시, 손에 힘이 안 들어가는 거라면 내가 먹여줄까?”

“……아, 아니……!”

 

그 정도는 아니야, 능글맞게 대답하는 하데스의 말에 세레스테가 펄쩍 뛰듯 대답하며 급하게 식기를 손으로 붙잡았다. 빨리 먹다가 체한다, 가볍게 응수한 하데스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흔들었다. 아침을 다 먹이고 나면 노을 사과라도 깎아 주는 게 좋을까, 동거하는 연인끼리 할 수 있을법한 산뜻한 생각을 이으며 말이다.

 

* * *

 

하데스가 묘하게 뚱한 표정을 지은 채 소파에 앉아있는 세레스테를 말가니 바라보았다. 딱딱하게 굳어선 책 페이지를 넘기지도 못하고 있는 세레스테의 모습이 퍽 불만스러웠으나, 그것을 대놓고 말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던 모양이다. 생각보다 세레스테가 오래도록 부끄럼을 타고 있었다. 벌써 뾰족하게 솟아오른 성곽 너머로 노을이 지고 있건만, 오늘 하루 나눈 대화가 밥 먹을까, 뭐 해, 두 마디 정도밖에 없었다. 애인이라기엔 너무 삭막한 분위기 아닌가? 본래 두 사람이 말이 없는 성정이긴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사귀기 전만 해도 시답잖은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곤 했는걸. 한숨을 쉰 하데스가 다시금 세레스테를 응시했다. 문득 자신을 바라보고 있던 세레스테가 흠칫 몸을 움츠리며 눈을 돌리는 게 보였다.

 

그 역시 나름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 같긴 한데. 눈만 마주치면 얼굴이 빨개져선 고개를 돌리기만 몇 번째인지. 자신이야 기다리는 데엔 어느 정도 도가 텄다지만, 저렇게 뻣뻣이 긴장한 채로 있는 게 좋은 일도 아니고. 언제까지고 단답형 대화만 하며 살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은가? 역시 이럴 땐 먼저 나서주는 게 나으려나, 제 턱을 손으로 쓸어내리던 하데스가 결정했다는 듯 세레스테 쪽으로 팔을 뻗었다.

 

세레스테의 어깨 위로 퍽 폭이 넓은 손이 올라갔다. 그 행동에 세레스테가 놀란 듯 가볍게 숨을 들이켰지만, 하데스는 그런 세레스테에게 능글맞게 웃어 보일 뿐이었다.

 

“첼레, 아까부터 너무 눈을 안 마주쳐주는 거 아닌가? 슬슬 섭섭한데.”

 

본인 초코보에게는 상냥하게 말까지 걸어줬으면서 말이야. 진담 섞인 농담을 뱉어내며 하데스가 제 품으로 세레스테를 끌어당겼다. 작고 마른 체구의 여인이 어렵지 않게 하데스의 품에 안겼다. 당황한 듯 얼떨떨하게 자신을 올려다보는 표정을 마주 보며 미소 짓던 하데스가 곧 다른 팔까지 끌어와선 세레스테를 꽉 끌어안았다. 으응, 하고 제 품에서 바르작대는 타인이 귀여워 참을 수 없었다. 세레스테의 볼에 가볍게 입을 맞춘 하데스가, 곧 그와 이마를 맞대며 능청스레 속삭였다.

 

“아니면, 이젠 내가 싫어졌나?”

 

사랑을 고백하는 고대인은 취향이 아닌가 보지, 하데스의 말을 들은 세레스테가 눈을 휘둥그레 뜨며 하데스를 바라보았다.

 

“그럴 리 없잖아!”

 

자기도 모르게 큰 대답을 뱉어내며 단언한 세레스테가 뒤늦게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안절부절못했다. 결국 고개를 푹 숙이는 세레스테의 모습에 하데스가 벙찐 눈을 깜빡이고 표정을 고쳤다. 이 이상 장난치다간 큰일 나겠구나, 싶어서. 사뭇 진지해진 얼굴을 한 하데스가 자세를 바로잡았다. 제 무릎 위에 세레스테를 올리곤, 그가 편하게 제 얼굴을 마주 볼 수 있도록 모로 앉혔다.

 

“그래, 네가 아직 날 좋아하고 있다는 건 확실한 것 같군. 하지만, 나는 그 부분에 관해서 자세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말이야.”

 

첼레, 괜찮겠나? 아까보다 조심스러워진 투의 목소리가 그의 이름을 불렀다. 세레스테가 손가락 끝으로 제 옷자락을 매만지다가, 간신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의사를 확인한 하데스도 숨을 뱉어내며 소파 등에 몸을 기대었다. 그가 편안하게 있을 수 있도록 최대한 분위기를 풀며, 다정하고 가벼운 말투로 세레스테를 향해 물었다.

 

“음, 내 착각일 수도 있지만 말이야. 오늘 네가 나를 종일 피해 다니는 것 같은데……. 내가 뭔가 잘못한 게 있어서 그러는 건가? 아니면, 너에게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인가?”

 

하데스의 물음에 세레스테가 잠시 제 하순을 꽉 깨물었다. 입술 상한다, 하며 잔소리처럼 말을 뱉은 하데스가 손가락으로 그의 입술을 가볍게 풀어주었지만 말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만큼은 덧붙이지 않았다. 대화를 진전시키는 것이 목적인데, 여기까지 와서 뒤로 물러나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 마음이 전달이라도 된 걸까, 한참 뜸을 들이긴 했지만 끝내 세레스테도 무언가 결심했다는 듯 입을 열었다.

 

“……당신이 잘못한 건 없어. 그냥, 내가…… 내 믿음이 부족한 것뿐이야.”

 

세레스테가 퍽 우울한 투로 중얼거렸다. 그의 말에 하데스가 한쪽 눈썹을 치켜올렸던가, 애써 중간에 끼어들지 않은 그가 계속 얘기해보라는 듯 느리게 세레스테의 어깨를 두들겨 보였다. 하데스의 격려에 후, 하고 크게 심호흡을 한 세레스테가 애써 속마음을 진정시키곤 말을 이었다.

 

“물론, 지금 상황이…… 너무 어색하고, 부끄러워서 그런 것도 있지만……. ……그런 것보다도, 정말 당신이 날 사랑해서 내 마음을 받아준 게 맞는 건지…….”

 

아니면, 동정이나 연민에서 비롯된 감정일 뿐인지. 모르겠어, 작게 중얼거린 세레스테가 제 하순을 꽉 깨물었다.

 

바보 같아, 세레스테가 저 자신을 속으로 힐난했다. 그가 진심으로 본인의 마음을 전해주었음에도, 그것을 알고 있음에도 자신은 하데스를 믿어주지 못하고 있었다. 혹시나 이 이야기를 꺼냈다가, 정말 동정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걱정. 이런 고민 따위로 말도 못 붙이고 다니던 자신을 초라하게 볼까 하는 두려움. 이 모든 의심스러운 기분에서부터 벗어나질 못하는, 자신에 대한 실망감이 한데 모여 뒤섞인다. 혼란스러운 마음이 가라앉질 못해서, 아침부터 지금까지 그와 제대로 이야기를 나눌 수가 없었다. 어느 정도 진정이 되더라도 그의 눈을 마주하면 다시금 불안스러운 감정이 수면 위로 떠 오르고 말았기에. 속을 털어놓는 지금마저도 세레스테는 너무나도 염려스러웠다. 제 안 좋은 예측들이 다 들어맞기라도 하면,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별로지, 이런 사람은. 본인이 먼저 좋아한다고 해놓고서…… 기껏 받아줬더니 의심이나 하고 있고…….”

 

주먹을 꽉 쥐던 세레스테가 약간은 체념한 듯이 고개를 떨구었다. 그 이야기를 들은 하데스가 나지막하게 앓는 소리를 흘렸다. 배신감이 느껴졌다거나, 서운해졌다거나 하는 이유는 절대 아니었다. 그는 홀로 오랜 시간을 버텨오지 않았던가, 그렇기에 타인을 제대로 신뢰하지 못하는 것이겠지. 한때 그의 어린 시절을 들은 적이 있었던 하데스가 착잡한 기분을 느끼며 세레스테의 머리를 가볍게 쓸어내렸다. 타인의 이야기를 뱉어내듯 덤덤하게 말하던 그가, 속으로는 얼마나 곯아있었을지 생각하면. 그러니 제 동료들에게도 쉽게 마음의 문을 열지 못하고 있었던 거겠지, 짧게 눈을 감았다 뜬 하데스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정확히는, 열려고 했다. 말을 덧붙이려던 하데스가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이 제 입을 다물었다.

 

말이라면 누구라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애정을 표현하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이지만, 누군가에게 믿음을 받는다는 일 자체가 부담스러울 너에게 그런 것만으로 믿음을 줄 수 있을까. 잠시 침묵하던 하데스가 곧 세레스테를 이끌며 자리에서부터 몸을 일으켰다. 갑작스러운 그의 행동에 세레스테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하데스를 따라 소파에서부터 일어났다. 그런 세레스테를 향해, 하데스가 한쪽 손을 내밀어 보였다.

 

“하데스?”

 

의도를 모르겠다는 듯, 세레스테가 눈을 깜빡이며 고개를 기울였다. 하데스가 가볍게 한쪽 눈썹을 치켜올리더니, 특유의 너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한 곡 하지. 어때, 왈츠는 좀 출 줄 아나?”

 

춤추는 일이 본업이잖아, 하며 물어오는 하데스의 물음에 세레스테가 조금은 황당한 표정으로 눈을 크게 떴다. 이런 상황에서 춤이라니,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자신을 바라보는 세레스테의 표정에 하데스가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너무 이상하게 보는 거 아닌가? 긴장이라도 풀 겸 네가 잘하는 걸 해보는 게 어떨까, 싶었을 뿐이야.”

 

나쁘지 않은 제안 아닌가? 하데스가 뻗은 손끝을 가볍게 까딱였다. 세레스테가 고민하듯 두 눈동자를 굴렸다. 뜬금없긴 하지만, 나름 자신을 위해주려는 듯한 행동이라는 건 변함이 없었기에. 한 번 속아주는 게 대수랴, 세레스테가 곧 고개를 끄덕이고선 하데스의 손을 맞잡았다. 다른 사람과 함께 춤을 춰 본 지가 좀 오래되긴 했지만, 자신의 실력에 어느 정도는 자부심이 있었기에.

 

그러나 문득, 무언가가 빠졌다는 걸 깨달은 세레스테가 주변을 돌아보았다. 거실 한켠에 배치되어 있을 오케스트리온에선 메트로놈 소리조차 나고 있지 않았다. 무반주로 춤을 추려는 건가, 고개를 기울이던 세레스테가 하데스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하데스, 음악은?”

“아…… 걱정하지 마. 아마 춤을 추기 시작하면 들리게 될 거거든.”

 

하데스가 능글맞게 웃더니 세레스테의 등 뒤로 팔을 둘렀다. 정말 뭘 하려는 건지, 세레스테가 미심쩍은 표정을 지으며 그의 어깨 위로 한쪽 손을 올렸다. 막상 오랜만에 춤을 추기 시작하려니 살짝 긴장된 탓일까, 세레스테가 마른침을 삼키며 하데스의 발을 내려다보았다. 그런 세레스테의 굳은 몸을 알아챈 하데스가, 괜찮을 거야, 하고 작게 속삭이며 느린 속도로 발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 발걸음에 맞추어, 세레스테도 한발, 한발. 천천히 과거의 기억을 끄집어내기 시작했다. 오른발을 먼저 뒤로, 왼발도 따라서. 평행이 된 두 발을 가까이 붙였다가, 다시금 앞으로 나아간다. 원을 그리듯 움직이는 것을 잊지 말 것. 움직임은 4분의 3박자에 맞춰서.

 

허나 음악은 여전히 들려오지 않았다. 감으로 박자를 맞춰가는 수밖에 없나, 세레스테가 경직된 숨을 뱉어냈다. 익숙하진 않았지만 못 할 일은 아니었다. 심장 소리를 기준으로 삼으면, 반주가 없는 상황에서도 춤을 이어갈 수 있었다. 제 맥박을 들으며, 발을 움직이면 될 터였다. 세레스테가 자신의 심장박동을 듣기 위해 조용히 집중했다. 쿵, 쿵. 평소보다도 빠른 두근거림이 느껴졌다. 눈앞의 사랑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었을까, 그것을 깨달은 찰나 세레스테의 눈동자가 둥그레 커졌다.

 

조용한 거실 아래, 가까워진 거리와 맞잡은 손 사이로 타인의 맥박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자신의 것만큼이나 빠르게 요동치는 울림이었다. 담담하고, 여유로워 보이는 표정과 다르게 그의 심장은 제 것만큼이나 쉬지 않고 뛰어댔다. 세레스테가 조금은 얼빠진 얼굴로 하데스를 올려다보았을까, 쑥스럽다는 듯 눈을 돌리려던 하데스가 애써 세레스테와 눈을 마주하며 작게 중얼거렸다.

 

“들리게 될 거라고 했잖아.”

 

너라면 들어줄 줄 알았거든. 하데스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세레스테를 제 품 안으로 끌어당겼다. 더욱 선명하게 들려오는 심장 소리에, 세레스테가 표정을 일그러트렸다. 울컥하는 마음과, 기쁜 감정이 오가는 탓에 애써 하순을 이로 짓누르며 감정을 참아내야만 했다. 하데스가 그런 세레스테의 턱을 살짝 잡아 올렸다. 색이 다른 두 눈동자가 서로를 비추었다. 숨을 너른하게 흘려낸 하데스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첼레, 네가 그랬지. 내가 없는 삶이 얼마나 끔찍했는지 알아버렸다고. ……나 역시도 그래, 더 이상…… 네가 없는 삶을, 나 없이 살아가는 너를. 상상할 수도, 지켜볼 수만도 없게 되었어.”

 

하데스가 손을 옮겨 세레스테의 얼굴을 감싸 올렸다. 떨리는 세레스테의 눈빛을 마주 보며, 하데스가 웃었다. 당장 자신을 믿어달라고는 하지 않을 것이다. 세레스테에게도 시간은 필요할 테니까 말이다. 그저, 자신이 다가갔을 때 그가 멀어지지만은 않기를. 바라건대 자신의 온기가 불신의 증표가 아닌, 그에게 있어 새로운 행복이 되기를.

 

“그러니, 첼레. 나에게 너의 세계를 보여주지 않겠나.”

 

함께 하고 싶은 것도, 해주고 싶은 것도 많으니까. 다정하게 물어오는 하데스의 질문에 세레스테가 대답 대신 하데스에게 입을 맞추었다. 입술 위로 닿아오는 따뜻한 감촉에 하데스가 눈을 감으며 세레스테를 두 팔로 감쌌다.

 

네가 나를 향해 진실로 웃어주는 일은 어쩌면 먼 미래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신의 특기는 기다리는 것이었고, 언젠가 너의 생이 다하여 별로 돌아가는 날에도 함께 할 것이 분명했기에. 그때가 올 때까진, 자신이 먼저 그에게 믿음을 줄 수 있도록 노력하리라. 언젠가 완전한 삶을 바랐던 자신이었다 하더라도, 지금은 불완전한, 그렇기에 아름다운 너를 사랑하게 되었기에. 여러 감정이 엉켜있다고 한들 상대방을 향한 제 마음만큼은 명백했고, 또 확실했으니까.

 

하데스가 떨어지려는 세레스테 쪽으로 다시금 몸을 기울이며 입맞춤을 이어갔다.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가 겹치며 화음을 자아낸다.